Sunday, June 14, 2009

Saturday, June 13, 2009

뒤집기/에이전시/자율성

해밀이가 마침내 뒤집기 시작했다. 마치 유괴라도 할 망상에 사로잡힌 과부처럼 해밀이에게 집착하는 걸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하하, 해밀이가 자라는 모습을 바로보는 거, 매일이 부족하다.  뒤집는 해밀이를 보면서 나눌 수 있었던 것 해밀이가 느꼈을 어떤 희열 같은 거? 뒤집기는 해밀이가 스스로 "시야"를 변화시켜보는 자율성의 바로 첫 동작이다.

이렇게 개인의 뒤집기/에이전시/자율성을 시작으로 해서 집단의 뒤집기/에이전시/자율성을 향해.

시장에서 돌아가는 길에 쇼핑가를 지나치면 너무 시끄럽고 번잡스러와. 보는 대신 듣기로 했더니 즐거워졌다.

앙리 쇼팽의 "몸의 노래" (클릭)


살림과 일

혜규씨의 베니스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살림. 다큐멘터리 필름에 곧잘 등장하는 새의 생활에 비하며 여성의 "전형적인" 역할을 강조하던 친구의 어떤 "포즈" 혹은 "목소리"가 선명한 가운데, 그에 동조할 바 없이 토요일 이른 오후 "일"과의 상관 관계 속에서 "살림"의 필요성에 대해서 새삼 되새기게 된다. 현경이라는 뉴욕 거주 학자 였나의 파퓰리스틱한 글에서 읽었던 것 같은 데 살림에 해당할 만한 영어의 도메서티라는 단어가 결코 한글에 해당하는 그런 에전시/enliven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. 샤워를 하고, 빨래거리를 정리해 세탁기에 돌리고, 토요일 장에 가서 시장을 보고, 액자 가게 들려 아네트의 딸 메렛이 선물한 "부엉이 부부" 작업 프레임 작업을 맡겨 두고, 샤프심도 사고. 그리고 오랜만에 이층 내 방에 올라와 작업 시작.

일에 몰두 하다 보면 살림에 소홀해 지고 그러다 보면 삶이 피폐해 진다. 살림은 그런 의미에서 필요하다. 살림꾼이 될 필요는 없다. 그런 꾼의 해방은 절대요.

 

Wednesday, June 10, 2009